베테랑의 힘: 두산, 현대 왜 강한가-6월25일자 기사 뒷북 펌.
베테랑의힘

두산, 현대 왜 강한가
수원=최민규·이종길 기자 / 2007-07-05




현대와 두산의 주중 3연전 첫날인 6월 19일 수원구장에는 취재진 20여 명이 몰려들었다. 기자실은 지난해 포스트시즌 뒤로 가장 북적거렸다. 현대는 올시즌을 3연패로 시작했고 두산의 4월 순위는 최하위였다. 시즌 전 예상과 비슷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두산은 1위, 현대는 4위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타 플레이어들을 내보내기만 했던 두 팀은 올해도 역시 순위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왜 강할까.


6월 19일 수원구장에서 두산과 현대가 맞붙었다. 누가 이겼을까?
사진 김수홍


시즌 개막이 한 달가량 지난 4월 30일께 현대 김시진 감독은 사석에서 두산 김경문 감독을 만났다. 현대는 이때 3연승을 거두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고 두산은 8승12패로 최하위였다. 김시진 감독은 김경문 감독에게 “맞붙어보니 두산이 가장 까다로운 팀이다. 곧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6월 19일 수원 구장. 김시진 감독은 “그 뒤로 두산은 연승, 연승하더니 1위로 치고 올라가더라고. 우린 8연패로 죽을 쒔지”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날부터 수원구장에서는 현대와 두산의 3연전이 시작됐다.

4월 나기가 힘에 부쳤던 두산은 5월 3~11일 6연승, 5월 26~31일 5연승을 달리며 일약 선두권으로 뛰어올랐다. 현대도 김시진 감독의 엄살보다는 좋은 성적을 냈다. 8연패(5월 13~23일) 때만 해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연패 중에 김감독은 수원구장 밖 정자에서 담배를 피워 물곤 했다. 현대 코치들은 모두 금연파라 같이 담배를 피울 상대도 없다. 그러나 그뒤 15승8패를 거두며 되살아났다. 이날 수원에서 1위 두산을 맞았을 때 승률은 29승29패로 딱 5할에 맞춰져 있었다.

두산과 현대는 모두 넉넉한 살림이 아니다.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2위팀 현대는 올해 연봉 총액을 2억 6천만 원 인상했다. 그러나 평균 연봉으로 따지면 3.6% 감소다. 야구가 직업인 선수들의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2명은 선수 등록 마감일인 1월 31일을 넘긴 뒤에야 계약서에 사인했다. 올해 현대는 과거 현대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지원금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보증을 선 대출금 등으로 어렵게 살림을 꾸리는 처지다. 신인으로 등록한 선수는 세 명뿐이다.
KBO의 2월 집계에 따르면 두산의 올해 연봉 총액은 28억 8천만 원으로 8개 구단에서 가장 적다. 1위 삼성(62억 원)은 물론 7위 KIA(36억 원)와도 큰 차이가 난다. 겨울에는 박명환을 프리에이전트(FA)로 잃었다. “박명환은 물론 미국에 있는 김선우까지 잡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빈말에 그쳤다. 김선우와는 몸값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박명환은 “두산 측이 협상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즌 전 전망도 모두 하위권이었다. 그러나 두산과 현대가 없는 올해 페넌트레이스 경쟁은 생각할 수 없게 됐다. 두산이 박명환을 데려간 서울 라이벌 LG에 6승2패, 현대가 연봉 총액 1위 삼성에 8승3패를 거두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현대와 두산은 왜 강한가. 왜 매년 하위권으로 꼽히면서도 선전하고 있을까.

팀 분위기는 어디에서 나오나

두산 김경문 감독.
사진 김수홍
두산은 젊은 팀이다. 선수단 평균 연차는 6년으로 가장 낮고 평균 나이는 25.5살로 KIA에 이어 두 번째로 젊다. 반면 현대는 노장들의 팀이다. 주전 야수 9명 가운데 30대 선수가 5명이며, 26살 이하 선수는 유격수 지석훈(23)이 유일하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두 팀은 8개 구단에서 가장 팀 분위기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베테랑의 리더십이 강한 팀으로 꼽힌다. LG 관계자는 “두산은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분위기다. 이 점은 꼭 본받고 싶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리더십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현대 정명원 투수코치는 “우리 선수들은 힘들수록 잘 뭉친다. 선참들이 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 ‘팀 분위기’라는 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이 다름아닌 프로야구다.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야구를 하는 이들이다. 살벌한 경쟁과 ‘분위기’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 3루수 정성훈에게 “현대의 팀 분위기가 좋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정성훈은 2003년 12월 KIA에서 현대로 트레이드된 선수다. 정성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팀 성적이 좋으면 자연스레 분위기가 좋게 마련이다. 성적이 나쁘면 분위기도 처진다. 이 점은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럼 차이는 뭘까. “선배들이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야구팀에서 ‘분위기’는 그저 인간적인 관계만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정성훈은 “후배들은 선배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지 프로무대에서 살아남는다. 그래서 자연스레 경쟁이 붙게 된다. 현대의 분위기가 좋다는 말은 그래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야수 장원진(38)은 두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다. 장원진은 “두산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선배들이 리더십을 발휘한 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선배들의 말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베테랑들이 이끄는 ‘팀 분위기’란 팀 내 경쟁의 활성화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 프런트 관계자는 “야구는 특이한 종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축구팀에서는 주전에서 물러난 선배가 시어머니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야구에선 그게 안 된다. 주장을 맡은 선수가 형편 없는 성적을 낸다고 하자. 이 경우 십중팔구 주장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게 야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KIA가 올해 부진한 이유는 선참 이종범의 부진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지난해 7위 롯데도 주장 손인호가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악전고투하고 있는 지난해 챔피언 삼성에서는 선동열 감독이 “실력 없는 노장들은 명예롭게 은퇴해야 한다”며 선수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세대교체에서 잡음이 들릴 수밖에 없다.
현대와 두산은 이른바 ‘신구조화’가 좋은 팀이다. 두산에는 37살 안경현이 중심 타선에 포진하고 있다. 장원진은 지난해부터 노쇠 기미를 보였지만 36살까지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베테랑의 팀 현대는 말할 나위도 없다. 36살 이숭용이 주장 책임을 맡으면서도 6월 21일 현재 타율 1위(0.360)를 달리고 있다. 김동수는 39살 나이에도 주전 포수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38살 전준호도 3할3푼5리의 고타율이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선수가 20대 선수 못지않은 성적을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테랑이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선수 자신의 노력이 첫 번째 요소다. 이숭용은 “김동수 선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한다. 야수 포지션 가운데 가장 체력 소모가 큰 포수를 39살까지 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안경현도 지독한 노력파다. 두산 관계자는 “경기가 끝난 뒤 안경현은 단골로 특타를 친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도 구장에 나와 배트를 휘두른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계약기간이다. 안경현은 올시즌 전 2년간 10억 원에 FA 계약을 했다. 현대는 2005년 김동수와 2년, 지난해 전준호와 1년 FA 계약을 했다. 현대 관계자는 “베테랑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코칭스태프의 선수 기용 방식이다. 김시진 감독은 베테랑의 역할을 존중하는 스타일이다. 전임 김재박 감독도 그랬다. 김경문 감독도 마찬가지다. 김경문 감독은 “감독으로 한 시즌을 보내다 보면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 염경엽 코치는 “위기에서 선수들이 여유를 가진다. 코칭스태프가 ‘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네 번째는 경쟁의 유도다. 20대 후반의 전성기를 맞은 선수가 주전을 꿰차고 있다면 유망주들은 좌절하기 쉽다.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노장이라면 치고 나갈 틈이 보인다. 베테랑들이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기량을 보인다면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노장들과 경쟁할 신진들도 잘 만들어 낸다.
두산과 현대는 모범적인 2군 운영을 하는 팀이다. 두산은 OB 시절인 1987년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2군을 운영한 팀이다. ‘소수 정예’라는 원칙을 갖고 2군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도 창단 직후부터 원당에 2군 훈련장을 뒀다. 현대 정명원 코치는 “서두르지 않고 선수들을 만들어 낸다. 특히 2군에서 근력이 붙는 선수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경쟁은 강팀을 만든다

현대와 두산은 과연 시즌 전 전망처럼 약한 팀일까. 지금의 성적은 이변일 뿐일까. 현대 정재호 단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단장은 “약한 전력으로 좋은 성적을 낸다는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며 “현대는 원래 좋은 팀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선수단에 큰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 김시진 감독.
사진 김수홍
지난해 현대는 547득점으로 이 부문 1위였다. 467실점은 KIA에 이어 2위였다. 야구는 점수를 많이 내고 실점을 적게 하면 이기는 경기다. 지난해 현대는 페넌트레이스 1위 삼성에게 4경기밖에 뒤지지 않았다. 재정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연봉 총액은 박명환을 데려온 LG보다 많다. 베테랑들이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는 게 큰 약점이었지만 이들의 기량은 떨어지지 않았다.

투수 출신인 김시진 감독은 “야구는 투수가 안정돼야 이기는 경기”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올해 현대를 이끄는 힘은 타선에서 나온다. 투수진은 지난해만 못하다. 올해 실점은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러나 득점에서는 한화, SK에 이어 3위다.

야수진의 약점은 2루수와 유격수에 있다. 그러나 1루 포지션에서 이숭용이 생애 최고 타율 기록을 세울 기세다. 3루에서 정성훈을 앞서는 선수는 두산 김동주 정도다. 포수 김동수의 OPS(출루율+장타율)은 LG 조인성에 이어 2위다. 올시즌 프로야구에서 외야수들의 타격은 대체로 부진하다. 현대는 예외다. 외야수 OPS 랭킹 2위는 이택근, 3위는 송지만, 5위는 전준호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2004년의 위력을 되찾은 클리프 브룸바가 있다.

마운드에서는 미키 캘러웨이의 부상이 장기화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4월에 0.28이던 장원삼의 방어율은 5월 4점대, 6월 7점대로 올라갔다. 지난해 8개 구단 최강이었던 전준호의 승운은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잠수함 마무리 박준수는 스트라이크존 변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김수경이 재기에 성공했고 마무리 자리에는 송신영이 들어왔다. 신철인이 빠진 불펜에는 조용훈이 스타로 떠올랐다.

두산은 지난해 현대와 함께 최소 실점 부문 2위에 오른 막강 마운드를 자랑했다. 박명환이 빠졌지만 마운드는 건재하다. 따지고 보면 박명환은 지난해 팀 내 서열 4위의 투수였을 뿐이다. 방어율 2.79를 기록한 이혜천의 공백은 아쉽다. 올해 두산에서 10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투수는 다니엘 리오스, 매트 랜들, 김명제뿐이다. 그러나 구원투수들은 더 강해졌다. 지난해 두산의 불펜 방어율은 3.80으로 6위였다. 올해는 2.83으로 3위다.

‘두 점 베어스’로 조롱 받은 타선에는 김동주가 돌아왔다. 김동주의 OPS 순위는 롯데 이대호, 한화 제이콥 크루스, 한화 김태균, 삼성 양준혁, 현대 브룸바에 이어 6번째다. 타자들에게 불리한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다는 점에서 팀 공헌도는 기록 이상이다. 여기에 김동주의 포지션은 3루수다. 위의 5명의 포지션은 모두 수비 공헌도가 낮은 1루수 아니면 지명타자다. 포수 홍성흔은 올해 부진하지만 타율 2할1푼대가 원래 실력이 아닌 선수다. 1루에는 안경현이 있고 2루수 자리는 2군에서 ‘야구 천재’로 통하던 고영민이 꿰찼다. 최대 약점이던 유격수로는 SK에서 트레이드돼 온 이대수가 손시헌의 빈자리를 메웠다. 외야는 늘 그렇듯 타격만으로는 눈에 띄는 선수가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평균 이상을 하는 게 강점이다. 두산 관계자는 “이종욱 외에는 고정 출전하는 외야수가 없다. 민병헌, 윤재국, 김현수의 경쟁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SK와 팀 도루 부문 1, 2위를 다투고 있는 스피드도 두산의 힘이다.

그들은 프로다

올해 페넌트레이스는 대접전이다. 한 번 연패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밀린다. 1위 두산은 6월 19,20일 현대전에서 모두 졌다. 그리고 SK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두산 김승영 단장은 “두산 2군을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을 거절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페넌트레이스다. 선수들의 긴장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유를 되찾은 현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올해 현대는 유난히 연승과 연패가 잦다. 현대의 전력분석팀장 격인 김경남 기록원은 “연승, 연패가 많다는 건 팀이 아직 불안하다는 증거”라며 우려했다.

현대의 주포 클리프 브룸바는 괴력을 되찾았다.
사진 김수홍
두 팀은 공통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두산은 제 2선발 랜들이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랜들은 6월 5일 광주 KIA전 등판을 마친 뒤 홀로 상경해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팔꿈치 통증은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만성이다. 5월 이후 랜들의 방어율은 4.60이다. 6월 세 경기 등판에서는 모두 6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랜들이 무너진다면 사실상 두산 마운드는 리오스 1인 체제다. 현대의 에이스 캘러웨이는 전반기 출전이 어렵다. 김시진 감독은 캘러웨이의 교체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최악의 경우 유망주 투수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정상의 뚜렷한 약점과 약체라는 편견 속에 두 팀이 올해, 아니 최근 몇 시즌 동안 보여준 선전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두산과 현대는 최근 팀 구성에 큰 변화를 겪은 팀이다. 두산은 2003년 이후에만 트레이드, 신고 선수 영입 등으로 18건의 선수 이동을 겪었다. 현대는 심정수, 심재학, 박재홍, 박경완, 박진만, 박종호 등 올스타급 선수들을 숱하게 내보냈다. 이러다 보니 두팀 모두 중견 선수들이 적다.

상식적이라면 중간이 약한 조직은 불안정하다. 그러나 두산과 현대는 조직 변동과 열악한 재정 상황 속에서도 강한 팀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두 구단의 공통점은 조직 구성원들이 자기 할 일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프로야구단은 전문가 집단이다. 선수들은 야구 기술의 전문가이고 코칭스태프는 코칭의 전문가다. 프런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프로야구에는 감독 한 명이 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감독 중심의 야구’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지난해 겨울 8개 구단이 경쟁적으로 강훈을 강조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다.

프로야구단은 국내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복잡한 조직이다. 현대와 두산은 조직의 힘으로 성공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있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다.




SPORTS2.0 제 57호(발행일 06월 25일) 기사
서른 일곱살 안경현

안경현 “내가 리더라고? 글쎄….”
과천=이종길 기자 / 2007-07-10




안경현은 매번 타격자세를 수정하고 있다.
사진 김수홍
나이가 들수록 성적이 좋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2000년부터 매년 타율 2할7푼 이상을 기록했다. 1992년 OB입단 이후 1999년까진 2할7푼 이상 타율이 단 두 번밖에 없다.

1999시즌이 끝난 뒤부터 타격자세에 변화를 줬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것도 1999년 겨울부터다. 2할4푼7리였던 타율이 2000시즌에 3푼이 올랐다.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에 더욱 신경을 썼다. 요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체력을 강화하는 데 힘 쓰고 있다.

타격 자세의 변화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동료들도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해마다 자세가 바뀌었다. 스윙하기 편한 자세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자세를 바꾸는 것은 타자에게 위험하다. 특히 나같이 적지 않은 나이의 선수에겐 더욱 그렇다. 1년만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은퇴로 연결될 수 있다. 얼마 전 2천 안타를 친 양준혁이 타격 자세를 고치는 데 힘든 결정을 내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마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했나.

처음 시작한 운동은 야구가 아니고 스케이팅이었다. 강원도에서는 야구보다 겨울스포츠가 더 인기가 있다. 원주 중앙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1년 뒤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는데 처음엔 전혀 관심 밖이었다. 야구부와 축구경기를 많이 해서 친할 뿐이었다. 축구경기에서 골을 많이 넣었는데 야구부 감독님께서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며 가끔 놀러 와서 배트를 휘둘러보라고 말씀하셨다. 연습장이 붙어 있어 호기심에 몇 번 가서 쳤는데 재미있었다. 스케이팅 훈련이 끝나면 야구장으로 가 배트를 휘둘렀다. 겨울에는 스케이팅 선수였고 여름에는 야구선수였다.

스케이팅을 왜 그만 뒀나.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중학교에 스케이트부가 없어 자연스럽게 야구를 하게 됐다. 원주는 야구 인기가 좋은 도시가 아니라 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설도 부족하고 선수들도 뭔가를 해내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학교마다 야구부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고교에 올라가 좀 나아졌나.

두산 선수들 가운데 내가 고교시절 전국대회 성적이 가장 좋지 않을 것이다. 고교 3년 동안 전국대회에 5번 나가 5경기를 뛰었는데 모두 졌다. 그래도 봉황기대회에 3년 연속 출전했다. 예선이 없었으니까.

고교 졸업 뒤 연세대에 스카우트됐는데.

고3때 원주고 김상호 감독님께서 테스트를 받아 보자고 연세대로 데려가셨다. 이틀 동안 테스트를 받았는데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해 연세대가 고려대와의 정기전에서 조계현 선배가 호투했지만 졌다.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테스트를 받아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테스트에 합격했다.

테스트를 받고 집에 돌아가 결과를 기다렸다.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는데 대학에 진학할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이 정해져 있었다.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과 거의 매일 놀았다. 방 1개짜리 숙소에 모여 장기를 두다 점심을 먹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합격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학교가 뒤집어졌다. 원주고 야구부 최초로 대학에 진학한 선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과수원 땅을 팔아 연세대에 입학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우리집 과수원은 규모가 매우 작았다. 불가능한 일이다(웃음).

연세대에 입학한 뒤 어땠나.

입학하자마자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덥고 훈련량도 많아 죽는 줄 알았다. 그때 지금 SK 전력분석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정준이와 고생을 함께 해 친해졌다. 집으로 자주 놀러 가고 거의 같이 지냈다. 정준이 집에 야구장비가 많았다. 몇 개씩 얻어다 쓰기도 했다.

졸업 후 2차 4순위로 OB에 지명됐다.

계약한 해에 OB가 꼴찌여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가는 곳마다 좋았던 곳이 없었던 것 같다(웃음). 졸업반 때가 가장 후회스럽다. 원 없이 놀았다. 농구부, 럭비부와 함께 매일 놀러 다녔는데 그때 농구부 (이)상범이와 친해졌다. 3달 동안 뛰질 않았다. 뛴 적이 있다면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에 걸려 뛴 게 전부였을 거다. 3달 뒤 몸무게가 20kg이 늘어 100kg이 됐다. 당시 김광수 선배가 날 처음 보시더니 “너 포수니?”라고 물었다.

성적도 부진했다.

배트가 매번 허공만 갈랐다. 프로에 올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 후회가 막심했다. 그때 내가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야구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배트를 잡았다.

당시 포지션이 유격수였는데.

유격수는커녕 1루수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공을 던지니까 어깨까지 아팠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날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 프로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내 자신만 괴로웠다. 내 자신이 한심해 2군행을 자청한 적도 많다. 그러다 너무 안 풀려 그해 8월 군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항명 파동 17인 가운데 유일하게 두산에 남아 있는데.

군산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와 낮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덥고 지쳐 스트레스 받기 딱 좋은 날씨였다. 경기마저 질질 끌려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때 윤동균 감독님은 다혈질이셨다. 경기에서 지자 선수들에게 “너희들 나 물 먹이려고 일부러 지는 거야”라고 소리 치셨다. 그게 사건의 발단이다. 숙소에서 선수들을 집합시키시더니 방망이를 꺼내 들고 “운동할 사람은 맞고 운동 안 할 사람은 맞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안 맞고 안 해야겠다고 생각해 맞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선수가 17명이었다.

숙소에서 나와 어디로 갔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조규제 선배에게 재워달라고 전화를 했다. 당시 조규제 선배는 신혼살림을 차린 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함께 소주를 마시며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새벽에 대전발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나를 포함해 17명이 기차에서 우연찮게 다시 모였다. 선배들과 양평에 가서 푹 쉬었다. 그러다 며칠 뒤 복귀해달라는 전화가 와 합류했다. 복귀하자마자 미국으로 교육리그를 떠나서 정신이 없었다.

그 다음해에 팀은 우승했다.

새로 오신 김인식 감독님은 선수들을 편하게 대해주셨다. 선수들 사이에 활기가 넘쳤다. 그러다 보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이론 우즈와 친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 편이다.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함께 술을 많이 마셨다. 우즈와 놀 때는 화끈했다. 언론에 공개하기 힘든 수준이다(웃음). 대구에서 삼성과 경기에서 져 분위기가 좋지 않은 적이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호텔로 가는데 입구까지 가는 계단이 높아 짜증을 내니까 우즈가 다가와 “Beer, Soju OK?’하고 물었다. 알았다고 말한 뒤 샤워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와 우즈를 보고 깜짝 놀랐다. 흑인 특유의 큰 손으로 만 원짜리를 한 움큼 쥐고 있었다. 적어도 100만 원은 넘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되겠냐는 말에 얼떨결에 “OK”를 해 거나하게 마셨다. 술값은 반반씩 나눠 냈다.

두산은 외국인선수들을 잘 뽑는 편이다.

다른 팀 외국인선수들은 잘 모르겠는데 우리 팀에 온 외국인선수들은 우리가 맞춰달라고 하기도 전에 본인들이 팀 분위기에 잘 맞춘다. 다니엘 리오스나 매트 랜들은 식사를 하지 않아도 식사시간에 참석한다. 집합이 있을 때 안 와도 괜찮다고 해도 굳이 통역을 데리고 와서 무슨 말인지 들으려고 한다.

우즈도 그랬나.

우즈도 그런 편이었다. 식사시간에 간혹 입맛이 없다고 따로 시켜 먹는 것만 다르다.

최근 두산이 상승세다.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 팀은 올시즌 특별한 전력보강을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팀에 득이 되는 것 같다. 보강 안 된 자리를 놓고 많은 선수들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주전선수 하나가 한 포지션에 버티고 있으면 후보선수들은 맥이 빠지거나 훈련에 소홀하기 쉽다. 하지만 한 포지션에 딱히 주전선수가 없는 경우엔 많은 선수들이 무한경쟁을 하게 된다. 특히 우리 팀은 조금만 열심히 하면 기회를 주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희망이 있다는 것 자체가 후보선수들에게 의욕이 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경기에 나서기 전에 훈련을 상당히 많이 한다. 단체연습이야 다른 팀과 차이가 없지만 개인훈련을 따로 많이 하는 편이다. 아마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이 할 거다. 여기에 올시즌을 일찍부터 준비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0월부터 일본으로 가 훈련했다. 체계적인 준비야말로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원동력이다.

팀의 최선참이다.

그저 나이가 많을 뿐이다. 특별히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없다. 거의 이야기 하지 않는다. 신경을 안 쓴다. 주장인 (홍)성흔이야 선수들과 이야기도 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파이팅을 이끌어내지만 난 다르다. 굳이 잘못된 플레이를 지적하거나 간섭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도 선참으로서 해야 할 몫이 있지 않나.

나도 팀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내가 신경 쓰면 후배들은 아마 더 싫어할 거다. 얼마 전 (임)태훈이한테 지나가는 말로 “세게 좀 던져”라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어제(6월 20일) 태훈이가 그랬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고(웃음). 126경기 동안 잘하는 날보다 못하는 날이 더 많은데 나까지 스트레스를 줘서야 되겠나. 어차피 야구하는 사람이면 자기 안 좋은 건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안다.

후배들과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나.

그건 아니다. 후배들에게 가끔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말을 한마디씩 건네려고 노력한다. 진지하게 물어보는 후배들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 ‘안경현 징크스’라는 게 팀에 있기 때문이다. 버스나 라커룸에서 내 옆자리를 쓰게 되는 선수는 2군으로 내려가거나 부진을 면치 못했다. 얼마 전에 트레이드돼 온 (이)대수도 내 옆 라커를 쓰다가 허벅지를 다쳤다. 얼마 전에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웃음).

주장으로서 홍성흔을 평가한다면.

훌륭한 리더십을 가졌다. 선수들에게 잘해준다. 아파서 경기에 못 나가는 데도 늘 웃고 다닌다. 정말 힘든 일 하는 거다. 속으로 많이 참고 억누르는 것이 대견하다. 팀보다 자기 몸을 챙겨야 하지 않는가. 희생정신이 투철하다. 난 경기 중에 어린 투수들이 흔들려도 마운드로 올라가 격려한 적이 없다. 주전 1루수로서 별로다.

최근 두산에 트레이드돼 온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잘한다.

코치나 선수들이 적응하기 편한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간섭하거나 뭔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꼴찌였던 OB와 ‘우동수 트리오(우즈, 김동주, 심정수)’ 시절의 두산 그리고 현재를 비교한다면.

1990년대 초반의 OB는 경직되고 파이팅보다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팀이었다. 윤동균 감독님이 워낙 다혈질이라 팀 분위기를 압도하셨다. ‘우동수 트리오’ 때는 타선에 힘이 있어 점수 차가 크게 나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수근이와 (홍)성흔이가 있어 팀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김인식 감독님도 선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셔서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을 많이 했다. 현재 두산에는 그런 힘이 없다. 하지만 야구를 참 재미있게 한다. 어린선수들이 팀을 이끈다. 나도 그런 걸 보며 배운다. 김경문 감독님은 철저한 준비를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장원진과 입단 동기이자 아직도 현역에 함께 남아 있다.

스타일이 달라 친하지 않다. OB 시절 김형석 선배와 술을 계기로 가장 친하게 지냈다. 친해지려면 술이 최고다. 선수들끼리 술도 많이 먹었다. 이길 때나 질 때나 한 잔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선수들이 그런 게 없다. 자기관리를 워낙 철저하게 해 술을 마시자고 권하기도 힘들다.

술을 먹으면서 어떻게 좋은 성적을 유지하나.

그만큼 많은 연습을 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 술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신다. 마음을 비우고 배트를 휘둘러야 더 잘 맞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하면 연습을 무리하다고 느낄 정도로 한다. 몸이 힘들면 타석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편하게 배트를 휘두를 수 있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가끔 효과를 본다.

야구인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01년 우승했을 당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뛰어난 활약을 보인 건 아니지만 주장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다.

주장으로서 선수들에게 무엇을 요구했나.

하고 싶은 대로 하되 어떠한 일에도 책임을 질 줄 아는 선수가 되자고 강조했다.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 사생활까지 엿볼 수는 없지 않은가. 선수단 전체에 피해가 가는 일만은 하지 말자고 얘기했다. 내가 주장을 맡은 동안 선수들이 사고 없이 잘 지내 고맙게 생각한다.

선수단 미팅도 자주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경현은 자신을 선참이라기 보다는 팀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김수홍
그렇다. 집합을 할 만한 일이 있어도 하지 않았다. 성격상 단체로 모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따로 전화를 하거나 방으로 찾아갔다. 2001년 하와이 전지훈련을 갔을 때 선수협 회비에 대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집합을 하지 않았다. 칠판에 뭔가를 쓰고 번거롭게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선수들 방을 찾아가 일일이 내용을 전달했다.

그게 더 힘든 거 아닌가.
방을 돌아다니다 힘들어 나중에는 전화로 알렸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이해시키기 쉽다. 나중에 딴 소리 나올 염려도 없다. 발뺌을 할 여지를 안 주는 거다(웃음).

2002년 4년간 15억 원에 프리에이전트(FA)계약을 맺었다.

구단에서 주는 대로 받았다. FA라 잘해야겠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시즌 내내 최선을 다할 뿐이다. 프로는 100-0으로 앞서고 있어도 타석에서 안타를 뽑을 생각을 한다. 빨리 경기를 끝내고 싶어도 막상 타석에 들어서면 시간을 끄는 게 바로 프로다.

큰 돈을 만졌는데 어디에 썼나.

구리에 더 큰 집으로 이사 간 것 외에는 아내가 관리해 잘 모른다. 최근 아내와 내기를 해 재미가 쏠쏠하다. 원래 용돈을 받았는데 얼마 전부터 안타 하나 칠 때마다 1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대신 안타를 못 치는 날엔 20만 원을 줘야 한다. 아직까진 내가 더 벌었다(웃음).

야구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봤나.

은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점점 좁아진다는 느낌은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어린선수들이야 기회가 많지만 나 같은 선수는 1년을 못하면 기회가 없다. 물론 오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야구선수의 운명이기는 하다.

미래에 대한 설계가 전혀 없진 않을 것 같은데.

코치나 감독 자리가 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모든 일은 장담할 수 없는 것 같다. 아직 이런 말을 할 시기도 아니고. 야구인이라면 계속 야구장 주변에 있고 싶지 않겠는가.

강원도 야구의 선두주자인데.

선두주자라는 말이 부담스럽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서울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단 한 명의 선배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물론 연세대 선배들이 잘 챙겨줬지만 아무런 학연, 지연 없이 버틴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시즌 고정 1루수로 출전한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덜 힘들다. 주자가 있을 때마다 견제구를 받아야 하지만 체력 소모가 덜하다 보니 타격에 주력할 수 있어 좋다.

팀 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위협하는 선수가 있다면.

정말 많다. 젊은선수들이 연습하는 걸 보면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다. 특히 내가 맡은 1루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포지션이다. 어떤 특정 선수가 잘해서라기보다 내가 못하면 바로 밀려날 수 있는 포지션이라 불안하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경쟁력이 긴장을 만들고 팀을 상승세로 이끄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월요일에도 구장에 나와 운동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월요일에 운동을 해야 화요일에 덜 피곤하다. 쉬고 나면 몸이 더 무거운 느낌이다. 특히 웨이트트레이닝은 시간 날 때마다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해보자고 독하게 마음 먹었다. 처음엔 근육이 아프고 몸도 뻐근했는데 계속 운동을 하다 보니 지금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사생활이 전혀 없을 것 같다.

집에 가면 거의 잠만 잔다. 아버지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야구가 끝나고 집에 가면 대략 밤 11시다. 애들이 잠을 자는 시간이라 내가 조용히 자는 게 서로에게 좋다. 월요일엔 뭔가를 하고 싶어도 애들이 학교에 가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중에 지금 못하는 걸 채울 생각이다.

목표가 있다면.

40살이 넘어서도 야구를 하고 싶다. 해마다 타석에서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야구란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경기다. 잘한다 싶으면 부진에 빠진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

SPORTS2.0 제 57호(발행일 06월 25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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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zzzzzzzn | 2007/07/21 23:54 | ⑧야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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